詩와 冊과 版畵 그리고... 185

안부 / 정병근

언제 한 번 만나자는 말 조만간 한잔하자는 말 믿지말자 전화를 끊으면서 그것은 내가 한 말이기도 했으므로 약속은 아직 먼 곳에 있고 나는 여전히 동문서답의 헛바퀴를 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일이 어디 약속뿐이랴 뱉은 만큼 못다 한 말들 입속에서 바글거리고 만나면 만날수록 결별만. 수북수북 쌓인다 그런게 인생이라고 나는 제법 늙은 머리를 툭툭 털면서 발톱을 깍으면서 안경알을 닦으면서 생거건데, 나는 죄의 신봉자였으니 일기장은 날마다 내게 반성을 촉구했고 지키지 못했으므로 반성은 더 많은 반성을 몰고 왔다 나, 이윽고 죄많아 빼도 박도 못하겠으니 그대 어디쯤 잘 계시는가. 제법 늙었는가 이 꽃이 지기전에 우리, 폐단처럼 꼭 한잔하자

흔들린다 / 함민복

나무는 흔들림도 주체적이었구나. 흔들린다 /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순서파괴

잘 준비한 사람이라고 해도 때로는 올바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질문을 '얻어 맞을' 수 있다. 이때 책임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다. "모르겠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해서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추측으로 답변하거나 즉석에서 답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나은 답변이다. - 책 '순서파괴' 에서 - 상황에 따라 순발력이나 임기응변력이 필요하지만 큰틀에서 보면 솔직한게 맞다.